전시를 열며 도난되었던 성보가 본래의 사찰로 돌아오는 것을 "환지본처"라고 한다. 종단은 소중한 성보를 지키고자 도난된 성보들을 되찾기 위해 여러 노력을 하고 있다. 이번 전시는 종단의 노력으로 환수되어 사찰로 돌아갈 도난 성보들을 공개하여 성보 본래의 의미를 되새기고자 한다.
팔성사 대웅전에 봉안되었던 아미타불좌상으로 1974년에 팔성사 대웅전을 건립한 후 암자에 봉안되어 있던 불상을 옮겨왔다고 전한다. 팔성사 주지스님에 따르면 도난 전 불상의 복장에서 강희 2년(1663)이 기록된 조성발원문이 존재하였다고 하나 지금은 전하지 않는다.
이 불화는 선암사 불조전에 봉안되어 있던 것으로 53불을 6폭으로 나누어 봉안한 오십삼불도의 일부이다. 1998년 도난 이후 현재는 4폭만이 남아 있다. 1999년과 2014년 두 차례에 걸쳐 환수된 선암사 오십삼불도는 원래의 모습이 크게 훼손된 채 발견되었다. 도난 이후 발견된 오십삼불도는 한 존상씩을 오려내어 액자로 만들었다. 나머지 부분의 행방은 현재까지 알 수 없다.
환수 성보문화재 특별공개 도난 성보, 발견에서 환지본처까지 2014년, 서울의 한사립 박물관에서은닉되어 오던 도난 성보들이미술 경매시장에나오면서 수사가 시작되었으며, 성보 31건 48점이 환수되고 원 봉안 사찰로 돌아가게 되었다. 이후 2016년, 지난 사건의 피의자가 다른 도난 성보들을 은닉하고 있다는 정보가 입수되어 종단과 경찰의 협력으로 총 7건 25점의 성보를 압수하여불교중앙 박물관에보관하였다.
운암사 극락전에 봉안되어 있던 아미타삼존불좌상의 좌우 협시 보살상이다. 도난 당시에 본존불은 화를 면하였지만 안타깝게도 2007년 화재로 소실되었다. 현재 조성발원문이 전하지 않아 정확한 제작 시기와 조각승을 알 수 없다. 두 보살상의 상호, 각진옷 주름처리 등은 조각승 금문이 제작한 문경 혜국사 목조아미타삼존불좌상(1684)과 유사하다.
위봉사 보광명전에 봉안되어 있던 관음보살, 지장보살입상으로 1989년 도난되어 행방을 알 수 없다가 2016년 종단과 경찰의 협력을 통해 찾게 되었다. 이 상들과 동일한 양식의 보살입상이 익산 관음사와 혜봉원에도 각각 봉안되어 있어 원래 4구의 보살상으로 조성하였음을 알 수 있다. 이 두 보살상은 현재 발원문이 전하지 않지만, 함께 조성한 익산 관음사의 보살입상에서 조성기가 발견되어 조성 시기와 조각승이 확인된다.
관음사 보살상의불상 조성기에따르면 1605년에 원오, 충신, 청허, 신헌, 신일 등이 문수, 보현, 관음, 지장보살상을 조성하여 위봉사 북암에 봉안하였다.
대흥사 천불전에 주존불로 봉안되었던 아미타삼존불좌상으로 도난 되었다가 불상과 함께 조성발원문(1670)과개금 중 수기(1982) 등복장 유물이환수되었다. 이 불상은 조성발원문을 통해 1670년 봄에 수조각승 천신을 중심으로 색난, 충옥이 조성하여 천개산 상원암에 봉안하였던 불상임을 알 수 있다.
색난이 제작한 불상의 특징인 왼쪽 무릎 위 넓게 펼쳐진 옷자락의 모습이 보인다.
일제강점기 재산대장에도 나한도와 독성도가 명기되어 있어 기록과 성보가 일치하며 나한도는 작은 크기로 한 폭에 열여섯 분의 나한을 모두 그렸다. 원통전의 봉안 공간이 작아 한 화면에 모든 존상을 표현한 것으로 생각된다. 두 불화 모두 화기가 훼손되어 불화 조성에 대한 정보를 온전히알아볼수 없고 2014년, 종단과 문화재청, 경찰청이 협력하여 31건 48점의 성보를 환수하면서 은닉되어 있던 정방사의 두 불화 또한 사찰로 돌아오게 되었다.
선암사 진영각에 봉안되었던 스님의 진영으로 불화의 원형이 훼손되어 화기가 남아 있지 않으나 과거 기록을 통해 건륭 3년 계해(1743)에 진영이 조성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현재 조성 시기를 확인할 수 있는 진영 중 시기가 가장 이르다. 진영을 그린 화승은 긍척으로 선암사에서 주석하며 전라남도를 중심으로 활동하였다. 도난된 후 행방을 알 수 없었다가 미국 해외 경매에 출품된 것을 국외소재문화재단에서 확인하였으며, 문화재청에서는 이를 도난품으로 공지하고경매 중지를요청하였다. 이후 소장자와의 협의를 통해 환수되어 해외 유출 성보 모니터링 과정에서 발견되어 환수된 사례이다.
정혜사 대웅전에 봉안되었다가 도난된 보살상이다. 1617년 대웅전이 중창되었을 때 함께 조성되었을 가능성이 높으며 복장물이 남아 있지 않아 원 소장처를 확인하기 어려운불상이었으나도난 직후 도난 신고를 하여 원 사찰을 확인할 수 있었다.
1971년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 해체 보수 과정에서 발견된 불상으로 석탑 2층에서 발견된 아미타삼존불좌상으로 석탑 내에서 봉안된 것으로 전하는 보살좌상 1구로 구성되었다. 불상과오층 석탑의사리장엄은 수습 이후 무량사에 보관하고 있었으나 1989년 불상을 포함한 사리장엄 전체가 도난되었다. 이후 2001년 아미타불좌상을 제외한 불상 3구가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의 수사를 통해 되돌아오게 되었으며, 2017년에 모 박물관에 수장되어 있던 아미타불좌상이 발견되어 돌아오게 되었다. 다만 현재 환수된 불상을 제외한 사리장엄의 소재는 여전히 알 수 없다.
2018년에 일본으로부터 환수된 치성광여래도로 화기를 통해 평양 만경대에 위치한 법운암에 봉안되었던 불화임을 알 수 있다. 법운암은 평양의 대표 사찰이다.
이 불화는 근대기 서울을 중심으로 활동한 예운 상규가 수화승으로참여하였는데상규가 조성한 마지막 불화는 표충사 삼세불회도(1930)로 알려져 있었으나 이 불화를 통해 상규의활동 연대를정확하게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봉은사 심검당에봉안되어 있던이 향완은 성보 관리인이자리를 비운 틈에 도난당했다. 절도범은 향완을 팔기 위해 기회를 노리며 은신하던 중 발각되어 에 환수되었는데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었기에관련 기관의협조를 받아 환수될 수 있었다.
명문을 통해 1344년에 조성하여 본래 삼각산 중흥사에 봉안하였던 것임을 알 수 있고,[봉은사 본말 재산대장](1910)을통해 일제강점기 이전에 봉은사로 옮겨 모셔진 것으로 확인된다.
응진전에 봉안되어 있던 영산회상도로 그림 하단의 화기에는 건륭41년(1776) 영산회상도를대 나한전에봉안하였다고 적혀 있는데, 원 소장처를 은닉하기 위해 사찰명은 도려내고 붉은색으로 칠하였다. 화기의 사찰명은 훼손되었지만, 도난 이전에 연구된 자료들을 통해 천은사에서 봉안되었던 불화임을 알 수 있었다. 18세기 후반 활동한 행정이 수화승으로 육원, 환종, 태화, 유운, 성잠과 함께 조성하였다.
화기를 통해 건륭 56년(1791)계헌이 제작하여부처님 오신 날에맞아 4월에 고창 문수사에 봉안하였음을 알 수 있다. 계헌은 18세기 중반 활동한 화승으로 장성 백양사 아미타후불도와 구례 천은사 지장보살도를 조성하였다.
불화를 훔친 뒤 화기의 사찰명을 먹으로 덧칠하였으나 희미하게 은해사를 확인할 수 있다. 에 은해사 승당의 신중도로 하은 응상이 그렸다. 1855년에 응상이 대시주로 훼손된 은해사 불상의 개금과 불화를 조성하였다는 내용의 복장 원문이 은해사에 전하는데, 이때 조성된 불화 중 하나로 추정된다.
건륭 59년(1794)에 조성하여 천불전 내부에 봉안되었던 불화로 두 폭에 각각 사천왕 2구씩 그려졌으며, 전각 내부에 봉안한 사천왕도 중에서 가장 시기가 이르다.
그림 하단에 봉안천불전좌라고 명기되어 천불전의왼편에봉안한 것임을 알 수 있으며 나머지 한 폭은 대흥사에 남아 있어 이번 환수를 통해 사천왕도의 완전한 모습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두 폭의 불화 모두 지언이 중심이 되어 그렸는데 두 그림의 밑그림의 형태는 비슷하지만 채색 방식이나오색구름의표현 등에서 차이를 보이며, 이는 각각의 불화 조성에 참여한보조 화승이서로 다르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유출된 이후 불화를 자르고 액자로 변형하는 과정에서 화기 아랫부분이 절취되어 조성시기를 제외한 원 봉안처와 화승 등의 정보를 알 수 없는 상태이다. 하지만 관련 연구서에 기록에 남아 있어 자환이 조성하여 은해사 운부암 원통전에 봉안한 불화임을 알 수 있다.
건륭 46년(1781) 성륜이 제작하여 연곡사 영산전 후불도로 봉안한 불화로 사찰명은붉은색으로칠하여알아볼수 없으나 현존하는 삼불회도 가운데 제작 시기가 이른 작품이다.
화기에 건륭 30년(1765)에 화승 두훈과 성총이 그렸다고 적혀 있는데 사찰명이 적힌 부분을 도려내고 칠한 흔적이 있어 불화를 훔친 후 원 봉안처인 사찰을 의도적으로 지우려 했음을 알 수 있다.
극락보전에 봉안되었던 산신도로 현재 화기는 잘려 없어졌으나, 1980년대 불화 연구서에 실린 사진과 화기 등 관련 자료를 통해 강진 무위사 산신도임을 알 수 있었다. 도난 전 화기에 광서 5년(1879)에 운파 취선이 조성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었다.
18세기 중반에 경상도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한 성장이 그린 그림으로 1755년 수화승 상오와 은해사 대웅전 삼장보살도를, 수화승 임한과 운문사 비로전 삼신불도를 그렸다. 또 1767년에는 수화승 두훈과 통도사 괘불을 그리는 등 다양한 화승과의 협엽이 확인된다.
은해사 대웅전 삼장보살도와 통도사 팔상도(도솔내의상)를 조성한 수화승 상오를 중심으로 각혜, 서도, 해청이 함께 건륭 11년(1746)에 조성하여 성흥사 명부전에 봉안하였다. 화기의 하단이 조금 잘려나가 있어 도난 당시에 훼손된 것으로 보인다.
전라남도 영암 도갑사에 봉안되었으나, 조선 불교총본산 건립에 맞춰 총본산(당시 太古寺, 지금의 조계사)의 주존불로 봉안하기 위해 이안된 상징적인 불상이다. [글출처.문화재청]
'여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한라산등산준비물 - 한라산성 판악코스 초보자 리뷰 예약방법 등산 준비물 점심 메뉴 (0) | 2025.02.22 |
---|---|
마블어벤져스스테이션 - 마블 어벤져스 스테이션 전시회 리뷰 (0) | 2025.02.22 |
서면데이트코스 - 서면 실내 활동 이색 데이트 코스 다이나믹 메이즈 부산 (0) | 2025.02.20 |
청평가볼만한곳 - 서울 인근 아이들과 볼거리 가평 청평 아이와힐 키즈 풀빌라 (0) | 2025.02.20 |
무이네여행 - 베트남 호치민 무이네 3박 5일 여행 일정 코스 총 정리 (0) | 2025.02.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