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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부여 무량사 삼전패 - [충남] 2021, 충남… 5. 부여 무량사

by venturelogs 2025. 3.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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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무량사 삼전패,부여 무량사 삼전패 (부여)

 

 

[강원] 2021, 충남… 5. 부여무량사 소재지:충청남도 부여군 외산면 만리116 일 프롤로그에서 밝힌 것처럼, 둘째 날의 일정은 숨겨진 성을 중심으로 돌아왔다. 숙소를 나와 부여 칼림슨으로 향하면서 동선상에 있는 일부 문화재를 함께 들르는 게.. 2일차 일정의 골자다. 게 중에는 미리 예정하고 있던 것도 있고, 의외의 만남도 있다. 원래 쥬암리 은행나무를 향해 갔지만 갑자기 이정표가 등장했다. 구리선에서 멀리 떨어진 것도 아니기 때문에… 기뻐하고 들렀다. 오전 9시경 무량사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래도! 지금 있는 절이 창건 당시 자리도 아니다. 창건 당시의 절적은 한 주문을 통과하면 계곡 왼쪽의 기슭에 남향으로 위치하고 있지만, 현재 밭에 경작되는 부분이 있다. 약 2천평의 면적 전역에서 다량의 기와 조각이 살포되고 있다. 화강암제 기단석열과 3단 석축으로 정교하게 쌓인 담으로 뻗어 몹시 정중하게 기울어진 건물지이며, 종말의 수준이나 각종 청자류로 보고 초창 당시 주변에서 가장 규모가 큰 사원이었던 것을 추측할 수 있다고. 이 옛 절적은 무량사 현지라는 이름으로 문화재(충청남도 문화재 자료)로 지정되어 있다. 그러나 오늘 무량사가 유명해진 직접적인 이유는 매월 당의 김시습(김시습, )이라는 위인 때문이다. 조선전기의 학자로 우리에게는 생육신의 혼자이고 또 한국 최초의 한문소설 김고신화를 세운 사람으로 잘 알려진 분이다. 그는 삼각산 중흥사에서 공부하고 양양대군이 단종을 내고 왕위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통분해 책을 불태워버려 안으로 이름을 설득으로 하고 전국에 방랑의 길을 떠났다. 그 후, 1463년(효녕대군)의 권유로 잠시 세조의 불경언해 사업을 돕고, 내불당에서 교정일을 보는 등의 현실 참가가 조금 있었지만, 모두가 1493년, 여기 무량사에서 죽었다. (문화재청+두산백과+한국민족문화대백과)

 

지금 여기 무량사에는 이 김시섭의 탑이 남아 있다. 무량사의 입구, 절의 알림 돌이 서 있는 곳 바로 앞에 다리를 건너 무진암이라는 암자에 오르는 길이 나오는데,

 

이 안의 진입로의 오른쪽 기슭에 마련된 불도밭에 몇몇 다른 탑과 함께 서 있다.

 

이 차량 자체도 매우 뛰어난 조형미를 갖춘 것으로 보이기 어렵지만, 주위의 나머지 차량이 더욱 구리가 된다.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무량사의 김시습부장은 무도는 아래에 3단을 이루는 기단을 마련하고 그 위에 탑신과 머리장식을 올렸지만 모든 부재의 단면이 8각을 이루고 있다. 기단은 상·하 지주에 연꽃을 장식했고, 중앙 지주에는 구름에 쌓인 두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다투는 형상을 새겼다. 탑신의 몸통에는 아무 장식도 없고, 연꽃이 새겨진 지붕석은 꽃 장식이 붙은 8개의 뿔이 높게 들리고 있다. 상단에는 복화: 덮인 그릇 모양의 장식)과 보주(꽃싹 모양의 장식) 등이 남아 머리 장식을 하고 있다. 조선시대 부도로 당시 작품에서는 조각이 매우 우수하고 화려하다. 일제 시대 때 폭풍으로 나무가 쓰러지면서 함께 쓰러졌지만, 그 때 아래에서 사리 1점이 나와 국립 부여 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다. (문화재청)

 

중심 공간에 들어가자마자 보게 된다… 아! 석등과 석탑, 그리고 극악전이 이루는 강력한 축은 매우 인상적이다. 매우 힘이 가득합니다.

 

그리고... 이 석등과 석탑, 그리고 극락전이 각각 보물급 문화재다.

 

하나씩 보자. 우선 가장 앞에 있는 돌 등. 보물 부여 무량사 석등은 무량사 법당 앞마당에 세워져 있는 팔각석등으로, 불을 밝히는 화란석을 중심으로, 아래에는 사각형 바닥석 위에 3단의 지석을 쌓아 올리고 위에는 지붕석과 머리장식이다. 아래의 기둥은 연꽃의 잎이 새겨져 있고, 중앙의 기둥은 기둥으로 길게 지어져 있고, 그 위에 연꽃이 새겨진 위의 지주가 놓여져 있다. 화석은 8면 중 4면은 넓고 4면은 좁은 형태로 넓은 4면에 창문이 열려있다. 지붕의 돌은 8개의 모퉁이의 상승과 처마의 경사가 잘 어울려 경쾌한 모습을 보이고, 위에는 작은 보살(연주: 연꽃의 꽃무늬의 장식)이 솟아있다. 전체적으로 지붕석이 약간 큰 느낌이 있지만 경쾌한 곡선으로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다. 아래·상부석의 연꽃조각은 통일신라 전성기의 화려한 연꽃무늬와는 차이가 있어, 각 부분이 형식적으로 흐르는 느낌이 있다. 만들어진 시기는 통일신라의 말부터 고려초 사이의 10세기경으로 추정된다. (문화재청)

 

다음 석탑. 보물 부여 무량사 오층석탑은 무량사 극락전 앞에 위치한 장대한 모습의 5층 석탑이다. 탑을 지지하는 기단은 1단으로, 둥근 두꺼운 석재를 포함한 계단에서 괴경을 만들고, 각면의 모서리와 중앙에 기둥을 세웠다. 탑신은 지붕석과 체석을 한층 더 5층을 이루고 있다. 네 모퉁이에 기둥을 세우고 있는 몸통은 지붕석에 비해 높이가 낮은 분이나 전체적으로 적당한 비례를 보이고 있어 우아하면서도 장엄한 느낌을 준다. 지붕석은 얇고 넓고 처마는 수평으로 되어 있으며 끝에서 가볍게 들립니다. 지붕석과 아래쪽 버팀대는 다른 돌로 구성되어 있으며 버팀대의 수는 위로 올라감에 따라 감소합니다. 탑의 맨 위에는 낮은 받침대 위에 머리 장식의 일부가 남아 있습니다. 백제와 통일신라의 석탑 양식을 조화시켜 만든 고려 전기의 탑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백제의 구지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으로 백제의 기법이 이어져 통일신라의 시대적인 양식도 계승되었다. 해체공사를 할 때, 탑신의 1층의 몸통석으로 금동제 아미타 여래좌상, 지장보살상, 관음보살상의 삼존상이 나오고 있어, 3층에서는 금동 보살상, 5층에서는 배이구가 발견되었다. 이 석탑 안에서 발견된 문화재를 따로 충청남도형 문화재 무량사 오층석탑 출토 유물이라는 이름으로 문화재 지정해 성보박물관에 모았다.

 

석탑에 대해서는 조금 덧붙이는 말이 있다. 휴전선 이남에 고구려계 석탑(다각 다층이 고구려계 석탑의 특징으로, 월정사 팔각구 층석탑이 대표적인 경우라고 해도). 정리해 보면 크게 3가지 있다. 1. 각 층의 체감 비율에 차이가 있다. 백제계 석탑은 층이 올라도 거의 일정한 비율로 체감돼 전체적으로 두꺼운 모습이지만 신라계 석탑은 층이 올라갈수록 체감 비율이 증가해 날카로운 모습이다. 2. 석탑의 각 부분을 이루는 부재의 개수에 차이가 있다. 신라계 석탑은 지붕석이면 지붕석, 체석이면 체석 하나씩 주로 통석을 선호한다. 그런데 백제계 석탑은 지붕석도 몇 가지 조합으로 체석도 그렇다. 3. 이 부분을 어떻게 표현해야할지 모르겠지만, 단지 긴 머리 장식으로 말한다면.. 지붕석 지붕의 기울기가 차이가 있다. 백제계는 지붕의 기울기가 거의 없고, 아래에서 보면 거의 수평으로 보인다. 신라계는 지붕의 기울기가 뚜렷하고 처음으로 체석을 덮는 지붕인 것 같다. 이해할 수 없는지 모르겠다. 이것을 이해할 수 없다면… … 말했듯이, 장발의 개념이 아직 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튼.. 위의 기준으로 보면.. 이 석탑은 아무리 봐도 백제계인데, 문화재청의 설명중 도대체 어디에 통일신라의 시대적인 양식도 계승되었는지 모른다. 장발장목에는 순도 90% 이상 백제계다.

 

누가 봐도 무량사의 중심 법당, 극악전의 말 차례다. 한국에 2층 법정이 그다지 많지 않아 그 존재가 더욱 돋보인다.

 

보물 부여 무량사 극락전은 한국에서는 그다지 흔하지 않은 2층짜리 불전으로 무량사의 중심 건물이다. 외관상은 2층이지만, 내부에서는 하·상층이 구별되지 않고 하나로 되어 있다. 하층 평면은 전면 5간·횡면 4간에 기둥간을 나누어 두었지만, 기둥은 매우 높은 것을 사용했다. 상층은 하층에 세운 높은 기둥이 그대로 뻗어 4면의 벽면 기둥을 형성하고 있다. 원래 그 작은 벽면에 빛을 받아들이는 창문을 설치했지만 지금은 나무 판자의 벽으로 막혔습니다. 아미타 여래 삼존상을 모시고 있는 이 불전은 조선 중기의 양식적 특징을 잘 나타낸 불교 건축으로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 우수한 건물이다. (문화재청)

 

조선시대에 이 정도의 규모의 건물이지만, 문화재청의 설명이 어디까지나밖에 없다는 것은… 정말로 기록이 없다는 뜻이다. 나는...

 

삼존화에 숨겨져 잘 볼 수는 없지만, 삼존화 이후 후불해도 다른 문화재로 지정되어 있다. 충청남도형 문화재 무량사 극악전 후 불각은 1747년 조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각각 독립적인 폭으로 현존 실내봉안불화 중 가장 규모가 크다고 한다. 그 밖에도, 미륵불가케불, 보물이라 불리는 삼삼패, 보물이라 불리는 지동정(동종, 충청남도 타입 문화재)이었던 구극락전 내에 모셔져 있겠지만, 이런 것은 법정의 깊은 곳에 모셔져 있다. 장부로 하고 Pass.

 

극락전 앞뜰의 왼쪽에 명부전이 있다.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부여 무량사 명부전은 극락전 전면 동쪽에 있는 건물로 지장보살을 모시고 명단의 십왕상을 모시며 일명 지장전이라고도 불린다. 건물 기단은 자연석을 이용한 저기단에 기둥은 원주를 사용하고, 좌우 측면 중앙 기둥과 배면 평 기둥은 직사각형 단면이다. 정면 3 사이, 측면 2 사이의 규모로, 지붕은 대치 지붕으로, 전면 3 사이에는 2개씩의 3개의 창문을 달고, 후면은 판 장벽으로 처리하고, 양 측면에 방풍판을 장착했다. 1872년, 원열 화상에 의해 건립되었다고 전해, 건물의 보존 상태는 양호하다. 무량사 명부전은 19세기 사원 건축물로서 단자이면서도 치졸하지 않고 화려한 날개공 양식이나 목판재 벽체 등 전통적인 건축양식이 잘 보존되어 왔으며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

 

자, 이제 극악전 주위를 조금 떨어져…

 

충청남도 문화재 자료 부여 무량사 야스야마덴은 극락전, 천왕문을 연결하는 조선선과 지교하는 축선 위에 위치한 건물이다. 영산전은 靈駕山에서 석가가 설법하고 있던 <호화경>의 영산 회상을 상징하는 건물로 일명 팔상전이라고도 불린다. 건물 규모는 정면 3간·측면 2사이의 직사각형 평면을 하고 있다. 가구는 5정도로 빔, 종보를 동자주를 사용하여 결찰하는 간단한 방식이다. 기단은 맥돌을 6단 쌓은 위에 축조했지만, 자연석을 댐 반주초 방식으로 사용했다. 기둥은 모두 원형 단면의 것이나 좌측면에는 구형 단면, 우측면에는 원형 단면의 것을 사용했지만, 크기는 다른 기둥에 비해 매우 적다. 기둥 위에는 초익공을 사용했지만, 앙서의 끝에 연화로 장식해, 보모리는 봉황두를 사이에 두었다. 벽면은 정면 아칸의 두 삼세창을 제외하고는 모두 판장벽으로 마무리했다. (문화재청)

 

그 긴 대장정의 끝이 드디어 도래했다. 무량사에서 소개하는 마지막 문화재는 김시석의 초상(금시습의 초상) 이다. 영상정 옆의 법정(현판이 따로 없다)에 모셔진 이 초상화는...그러나 복제다. 가미모토는 서울 조계사 옆 불교중앙박물관에 모셔져 있다. 원래 이 절에 있던 것을 그곳에 옮기면서 원래 장소에 복제본을 내놓은 것이다.

 

보물의 금시습의 초상은 은의 좌안 7분면의 복부까지 내려오는 세로 X가로=× cm의 반신상으로, 구슬 장식의 끈이 붙은 쿠사카사를 걸어 핑크색 옷을 입고 있다. 얼굴과 옷은 옅은 피부색과 그보다 약간 진한 색의 미묘하고 절제된 조화로 그려져 있다. 양미 사이를 고무하고 있는 표정은 치프린 눈썹에 상냥한 얼굴이다라고 묘사했던 서유영(서유영, 74)의 배관기(『운석시초』)와 상관했지만 눈총기가 태어났다. <김시석 초상화>는 매월 당 김시섭(93)의 초상화라는 인물사적 가치 위에 조선시대 야복 초상화의 가작이라는 점에서 중요성을 가진다. (문화재청)

 

그래… 무량사의 요모를 보았다. 말했듯이 무량사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본 정도라면 사실상 무량사의 전부라고 봐도 상관없는 것 같다. 그러니까 지금 포스트를 끝내도 전혀 문제는 없지만… 마지막으로 이 내용은 반드시 덧붙이고 싶다. 아무래도 장장장 입장에서는 무량사의 가장 큰 특징 중 하나로 꼽히는 부분이다. 말했듯이 무량사는 누가 봐도 거찰이다. 구성하고 있는 요소 중 하나 하나가 많다. 극악전도 크고, 극악전 내의 불상도 크고, 석탑도 크고... 이런 경우라면 일반적으로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은 위압감을 느낀다. 마치 김제금산사(LINK)를 들렀을 때, 구례화엄사(LINK)를 들렀을 때, 본 법주사(LINK)를 들렀을 때처럼… 실은 그런 위압감은 사원의 불교의 권위를 앞두기 위해 의도적으로 조성된 측면이 없다. 아무튼 여기 무량사도 그런 위압감을 받기에 충분한 장소인데… 실제로 가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 아늑한 고요함

 

●INDE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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